1. 한국의 정신적 지주가 된 기독교
(1) 동학 혁명(1894-1895)의 의의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분노하여 일어난 민란으로부터 시작된 동학 혁명은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까지 겹쳐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이 동학혁명의 정신이 항일의병운동으로 이어지고 3.1 운동으로 계승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특히 좌파역사학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은 마치 이러한 동학 혁명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학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유사한 것으로 보고 연결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기 전 프랑스는 오랜 기간 정치사상에 대한 지식인들의 깊은 고민과 연구로 인해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도 프랑스 혁명 자체는 전형적인 민주주의 운동이라기보다는 폭력 혁명에 가깝다) . 반면 동학군이 내세운 개혁안을 보면 탐관오리의 숙청, 동학농민군의 참정권 요구, 양반토호들의 탐학 배격, 토지재분배의 요구, 노비해방 등 반봉건적 개혁요구와 일본세력의 배격 등 1884년 갑신정변 때의 개혁 정강보다도 혁신적인 주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나 이론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학 혁명을 한국의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은 억측일 뿐이다. 동학 혁명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보다 민중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중민주주의자들은 용어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민중민주주의 사상을 민주주의라고 당당하게 내세운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밖에 없다. 민중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민중민주주의는 민중과 지배 세력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민중에 의한 계급투쟁을 불러오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민중민주주의와 달리 자유민주주의는 계급을 나누지 않는다. 자유 민주 질서 안에서 모두가 다 평등한 민주시민의 자격을 갖는다. 그래서 투쟁이나 폭력의 필요성이 없다. 법치와 질서만이 존재한다.
이렇게 다른데도 자유민주주의자들도 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자들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민중민주주의 사상도 민주주의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2) 기독교의 부상
동학 혁명이 일어나자 우리나라 정부는 청군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텐진 조약에 의해 일본도 자연스럽게 한국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왔고 결국은 청일전쟁(1894-1895)으로 이어졌다.
청일전쟁의 주 무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방이었는데, 이 청일전쟁이 한국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심대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노예적인 소작농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던 서민들은 청일전쟁으로 인한 물리적인 막대한 피해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 다른 나라 군대들끼리 전쟁을 하는 참담한 상황을 접하면서 민족적인 자긍심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유불선 3대 종교는 급격하게 영향력을 잃어갔다. 동학혁명
도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민중들의 정신적 기반이 되어갔다.
기독교가 전통적 제사를 반대하는 중대한 장애물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기독교가 정신적인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역사적 상황들은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자리 잡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 수 있다.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부상한 기독교는 3.1 운동을 비롯하여 중요한 이슈나 고비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심 세력으로 활약하였다.
2. 이승만의 비전과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수립
(1) 이승만의 회심
이승만은 한국 최초로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한 인물이다. 사실상 한국을 민주주의국가로 출범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히 국부 급으로 존경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을 친일파로, 기회주의자로 매도하고 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좌파 역사관에 물든 사람들이 이승만의 공은 최대한 배제하고 과만 최대한 부각시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승만은 왕족 출신인데도 왕정 폐지와 민주주의 국가 수립의 열망을 품었던 특이한 인물이다. 그만큼 이승만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와 신념이 확고하였다. 청년 이승만은 개화기에 서양의 근대문물을 접하면서 특히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근대 사상과 이론을 접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된다. 그래서 고종을 비판하다가
반역 혐의로 한성감옥에 갇힌 사형수가 되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이승만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자유사상을 가지게 된다. 성경을 통하여 양심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눈을 뜨게 된 이승만의 회심은 단순히 한 영혼의 회심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주의 국가 수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 이승만의 비젼
이승만은 기독교 사상만이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수립의 비젼을 가지게 된다.
이승만이 한국을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로 세우려는데 있어서 모범으로 삼았던 나라는 미국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식 공화제 민주주의 국가를 꿈꾸었다.
한편 감옥 안에서 이승만에게 전도 받고 회심한 지식인들은 모두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되어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수립에 동지들이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나라를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3)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수립
해방 직후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70%가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원하고 있었다. 사실상 사회주의 사상은 190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대세로만 본다면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순수한 민족독립 운동가들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가들로 나뉘어서 분열과 갈등이 심하였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가들은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넓게는 국제공산당조직 좁게는 레닌의 지령과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
독립 운동가들의 실체는 항간에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그들의 애국심과 용기와 투쟁심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이론이 많이 부족하였고 그 부족한 것을 이승만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독립 운동가들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되어 움직인 것이 아니었고 개별적인 활동이 많았고 사상과 이념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보니 생활비와 자금이 부족하여 동포들에게 폐를 끼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그만큼 투사로서는 뛰어나지만 국가를 이끌만한 지도자들로서의 역량은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우기 위해 이승만을 비장의 무기로 준비하고 계셨다. 이승만은 청년 때부터 영어에 통달하였고 미국에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 엘리트였다. 당시 우리나라에 이승만을 능가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승만을 국가 지도자로 원하였다.
좌파 역사학자들은 일본 강점기에 이승만이 한 것이 없이 놀고먹었다고 폄하한다. 독립 운동가들은 목숨 걸고 투쟁하였는데 이승만은 자리만 차지하고 개인의 안락만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승만은 소수에 의한 독립 투쟁으로는 나라를 올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외교전에 주력하였고 결국 미국의 도움을 이끌어 내어 자유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독립 운동의 방향이 다른 것을 가지고 이승만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 것이다. 오히려 당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실리적인 길이 어떤 것인가를 이승만은 올바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는 국회의장인 이승만의 사회로 성경에 손을 얹고 당시 국회의원 중 한 분이었던 모 목사님의 기도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끌어주시기를 바라며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로 공식출범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사실을 교과서에서도, 웬만한 역사책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역사 교과서에서 완전 삭제해 버린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이런 자랑스러운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이 태반이며 아는 사람들도 좌파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러한 역사 왜곡과 삭제를 조속히 바로잡고 복구해야 할 책임이 한국 교회에 있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6 | 북한에 대한 올바른 기독교적 인식 | 관리자 | 2026.08.11 | 14 |
| 5 | 이념대결과 기독교 | 관리자 | 2026.08.11 | 12 |
| » | 기독교 국가로 출발한 대한민국 | 관리자 | 2026.08.11 | 10 |
| 3 | 우리나라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 | 관리자 | 2026.08.11 | 11 |
| 2 | 사회주의(공산주의) 의 탄생 배경 | 관리자 | 2026.08.11 | 10 |
| 1 | 개혁주의(칼빈주의) 기독교 세계관 | 관리자 | 2026.08.11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