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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의 탄생 배경

관리자 2026.08.11 09:17 조회 수 : 10

(1) 산업 혁명과 빈부 격차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급속도로 기술 혁신을 이루어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전까지 농업이 주가 되었던 인류 사회는 공업의 비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산업 구조가 바뀌었고,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의 산업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었고, 정치, 문화 등 인류의 삶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경제 발전에 따라 사람들은 훨씬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되고, 부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산업 혁명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업 혁명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계급은 자본가, 지주, 경영인들이었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재산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처럼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사회는 점차 양극화되어 갔다.

그로 인해 가진 자 즉 부르주아와 가지지 못한 자 즉 프롤레타리아 계층 간에 갈등이 심해지고, 사회 불안과 범죄증가는 갈수록 심해졌다.

 

(2) 공산주의의 등장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문제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삶에 많은 지식인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공산주의라는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르주아 계급이 부를 독점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비참해진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산주의는 좁은 의미의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주의다.

넓은 의미의 공산주의 사상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다. 중세 유럽의 봉건 제도도 넓은 의미에서는 공산주의다. 심지어 초대 기독교의 공동생활도 좋은 의미의 공산주의다. 즉 공산주의가 근대에 구체적인 체제로 등장하기 전에도, 같이 생산해서 같이 평등하게 나눠 먹는다는 의미의 소위 좋은 공산주의 사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산주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공산주의는 원래 취지는 좋은데 현실하고 안 맞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공산주의의 실체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허울좋은 구호일 뿐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자체를 모순된 구조로 파악하고 그것을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왜 모순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자본가, 지주, 경영자 등 소위 부르주아 계급이 모든 토지, 생산 시설과 자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노동자, 농민 등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 없고, 부르주아 계급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를 타파하는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타파할 수 없다고 한다. 부르주아 계급이 철저한 갑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 혁명 밖에 없다고 한다.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토지, 생산 시설과 자본을 강제로라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가 도입된 나라에서 살육과 파괴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2. 공산주의의 문제점과 기독교와의 관계

1) 정반합과 이상적인 사회

공산주의는 역사 발전을 내세운다. 누구나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정(正)이 있다. 그러나 정의 모순이 발견된다. 그래서 거기에 반대하는 소위 반(反)의 세력이 등장한다.

정의 세력과 반의 세력은 투쟁 끝에 합(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합은 새로운 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 새로운 정 역시 모순이 발견된다. 그러자 거기에 반대하는 또 다른 반의 세력이 등장하여 또 다시 정의 세력과 반의 세력의 투쟁이 일어난다. 그래서 또 다시 합(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인류 역사는 되풀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역사적 변증법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역시 그러한 역사의 발전 과정 중에 속하는 한 가지 체제라는 것이며, 자본주의를 물리치고 공산주의가 최종적인,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2) 공산주의의 문제점

① 관념론에 불과한 공산주의

그러나 이러한 정반합 이론은 심각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인류 역사가 과연 정반합이라는 틀에 딱 맞추어 발전해 왔는지가 의문이다. 단순히 두 개의 세력이 투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그런 식으로만 파악될 정도로 역사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세력 투쟁은 역사의 한 부분일 뿐 인류 역사의 주된 흐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공산주의가 헤겔의 관념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론이 근대에 들어와 비판을 받게 된 것은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이론이나 사상이라도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1+1=2’라는 수학 공식이 올바르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1+1=2라는 공식에 딱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한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힘을 보태면 두 배의 효과가 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1.2 배 정도의 효과밖에 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떤 때는 10배의 효과가 나기도 한다. ‘1+1=2’ 라는 공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일 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그 자체로는 합리성이 어느 정도 있지만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② 합(合)이 아닌 공산주의

공산주의자들은 정반합 이론을 내세우지만 정작 공산주의는 합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반합 이론대로라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투쟁하는 가운데 합이라는 이상적인 답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산국가는 자본주의를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즉 정과 반이 투쟁하는 가운데 합이라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정을 물리치고 반이 그 자리를 차지해 놓고 합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합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공산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느끼게 되었고, 공산주의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것들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나누어 주는 분배와 복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위 수정자본주의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는 대부분 수정자본주의이다. 공산주의보다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적절히 배합한 수정자본주의가 오히려 이상적인 사회에 가깝다.

그래서 한 때 유럽을 점령했던 공산주의가 열등한 체제로서 도태되어 버렸다.

 

③ 유물론

공산주의는 유물론의 일종이다. 유물론은 모든 것을 물질로 파악하며 마음, 사랑, 우정, 신앙, 영혼, 영의 세계 등 정신세계를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뇌에 특수한 물질이 분비되어 뇌가 활동하는 물질적인 현상일 뿐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물론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한낱 물질적인 존재로 격하시켜 버렸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한 유물론은 정신적인 행복을 앗아가 버리고, 인간을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만족하는 동물적인 존재로 격하시켜 버렸다.

 

3) 기독교와의 관계

현대 공산주의 이념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원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내것, 네 것 구별없는 유무상통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을 그러한 이상적인 공동체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천년왕국을 이 세상에 실현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신앙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유물론적 역사 변증법이라는 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자발적으로 평등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기적인 죄성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방법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려 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성립 과정에서 폭력과 파괴, 살육이 일어나고, 성립된 공산주의 사회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아닌, 일부 지배 계급이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대부분의 민중은 노예 생활을 하는 기형적인 체제가 되어 버렸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공산주의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낙원 건설 운동이다. 이것은 허울만 좋을 뿐 실제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최대 적으로서 일종의 기독교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기독교적 비판은 4,5,6 강에서 하기로 한다.

 

3. 서구와 아시아의 공산화 과정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키비 혁명이 일어나서 레닌이 정권을 잡고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은 공산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어서 중국,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차례로 공산화 된다.

사람들은 각 나라마다 문화와 가치관이 다르고 민족주의 정신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공산화가 되었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각 나라마다 지배계층만 무너뜨리면 소수의 인원으로도 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산당이 결성되어도 그 인원이 소수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현재 남한에도 골수 급진 공산주의자들은 0.1% 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한이 절대 공산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 공산화된 것은 소련의 주도하에 소련의 군사력에 의한 침공으로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한도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 공격이 있지 않는 한 공산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만 본 것이다.

 

아무리 군사적으로 점령한다 해도 국민들이 동조하지 않으면 공산화는 쉽게 이루어지 않고 격렬한 반발에 부딪힌다. 그러나 예를 들어 루마니아의 경우 소련이 점령하기 전에 이미 루마니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산당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소위 말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전술’ 때문이다.

 

루마니아 공산당이 창설된 것은 1921년 5월 8일이다. 1944년 12월 2일 부쿠레슈티에서는 서너테스쿠정부가 그리고 1945년 2월 28일에는 러데스쿠정부가 척결되었다. 그 후 안드레이 브쉰스키는 미하이 왕을 종용하여 공산주의자인 그로자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따라서 1945년 3월 6일에는 루마니아 공산화의 첫 단계인 페트루 그로자 정부가 설립되었다.

 

1947년 12월 30일, 그로자와 게오르기우-데즈는 왕궁 주위에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국왕과의 면담에서 탁자에 권총을 두는 등 미하이 국왕에게 직·간접적인 위협을 가하면서 퇴위를 강요하였다. 주위와 단절된 미하이 국왕은 몇 시간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왕위를 포기한다는 사직 법령에 서명을 하였다. 1947년 12월 30일 그로자 정부는 루마니아가 인민공화국임을 공포하였다,

 

루마니아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공산주의자들은 세력이 불리할 때는 다른 정치 세력에 침투하여 그 세력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 연합된 힘으로 제 3의 세력을 타파한다. 물론 타파할 때는 그 세력의 모순과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확대 선전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타파해 나가서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연합세력마저 제거하고 공산정권을 수립한다.

사실 이런 연합전선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고 역사적으로 많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속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가장하여 같은 정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연합전선을 펴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추종하는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이지만 자유민주주의자인 것처럼 철저히 위장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아시아의 경우는 주로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연합전선을 폈다. 중국의 경우 모택동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소위 말하는 국공합작 연합전선을 펴서 일본을 물리쳤다. 이 때만 해도 국민당 사람들은 모택동이 같은 편으로서 전통적인 민족주의자로 생각했다. 한국의 경우도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을 항일 운동 지도자로 민족주의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민족은 혈연적인 민족관이 아닌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마치 전형적인 민족주의자인 것처럼 위장한다.

김구의 임시정부에도 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하였으나 처음에는 같은 민족주의 항일투쟁가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항일은 일시적인 투쟁일 뿐 실제로는 한국의 공산화를 꿈꾸며 국제공산당 조직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서 같은 편인 척 연합 전선을 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공동의 적을 물리쳐서 신임을 얻은 다음 돌변하여 상대편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것이 아시아 공산화의 주된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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